동경고이와성산교회
 
 
 
2022/09/18
요한복음 14:15-21절 / 성령하나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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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예수
Subject     사울의 과거와 바울의 현재
성경:딤전1:11-15절, 제목: 사울의 과거와 바울의 현재
설교: 김 병철 목사,    일시: 2022년 8월 07일 (주일)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은혜에 말씀의 제목은“사울의 과거와 바울의 현재”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기를 소원합니다. 이 말씀을 읽고, 듣고, 보는 가운데 성령 하나님의 폭포수와 같은 놀라운 은혜와 능력이 저와 여러분들 심령 가운데 넘쳐나시기를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패기만만한 실력 있고, 능력 있는 한 젊은 사울이 나옵니다. 사울은 대제사장에게 위임장을 받아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옥에 가두기도하고 자신의 섬기는 유대교의 논리에 맞지 않으면 살인까지 일삼는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로마인으로 태어났고, 혈통으로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 유대인이었습니다. 열심히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박해했던 사람입니다. 또한, 율법으로 흠잡을 때가 없는 자였습니다. 빌3:4-6절“4.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나는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했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사울의 과거와 바울의 현재를 생각해 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혈기가 충만했던 청년 사울의 과거는 어떻습니까? 사울은 히브리어로‘여호와께 구한다.’는 뜻을 갖고 있기도 하고 크다. 교만하다는 뜻이 있기도 합니다. 사울은 앞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장래가 탄탄대로가 열렸던 인물임입니다. 그는 부모를 잘 만나서, 좋은 환경 속에서 자라나 자신의 노력과 실력으로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들어갔고, 또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까지 신임받는 자리에 올랐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신의 실력과 능력을 의지하고 지금까지 달려온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요. 실력적으로 보자면 그는 당대 최고의 선생인 가말리엘 문하생이었습니다. 가말리엘 선생은 사도행전 5장에 율법사로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그리고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에게 권면합니다. 그때, 많은 이들이 그를 다 존경함으로 그의 말을 듣고, 따랐습니다. 당대 가말리엘 문하생이 되려면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들어갈 수 있다고합니다. 지금 표현으로 하면 사울은 천재였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자신감과 확신이 넘쳐있는 청년이었습니다. 사도행전 9:1절을 보면 사울은 자신감과 확신이 펄펄 넘치는 사람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라고 기록했습니다.

  이처럼 사울은 자신의 하는 일에 확신이 있었고,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라면 어떤 어려움이든, 어느 장소이든간에, 그 장소가 가깝든 멀든 상관하지 않고, 어디든지 가서라도 기어이 마침표를 찍고야 마는 사람이었습니다. 책임감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었지요. 그는 자신의 맡겨진 일 앞에서 목숨을 내놓을 만큼 책임감이 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성격에 소유자니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까지 신임을 받았겠지요.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지지부지,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사람 같았더라면 누가 그 막중한 책임을 맡기겠습니까? 저라도 맡기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유대교에 대한 신념과 믿음이 투철했습니다. 그의 인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초엘리트 코스를 통과한 엘리트 중에서도 엘리트, 초고속승진을 한 혈기 넘치고, 자기 신념이 가득찬 젊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위에서 열거했던 사울 청년의 이야기가 꼭!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삶이 아니었습니까? 혹시 여러분들의 마음, 여러분들의 바램은 어떻습니까? 누구나 다 초 엘리트 코스를 밟고, 초고속승진하여 감히 그 누구도 나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없도록, 오직 나만이 나를 컨트롤 하는 독보적인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까? 그 누구도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할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로 성공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누가 그러더라구요. 그 실력과 능력이 곧 너만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냐? 네가 부모 잘 만난 덕이 아니냐? 너의 그 좋은 환경과 스펙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니냐? 그렇게 말하더군요? 이같은 이야기를 들은 도리어 이렇게 말합니다. 부모 잘 만난 것, 좋은 환경과 배경을 가진 것도 실력이라고 말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범주에 속한다고 합니다. (ppt보여주면서)

자연인: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 아이와 같은 성도: 예수님을 믿으나 주 안에서 성장하기에는 시간이나 가르침이 더 필요한 사람 강퍅한 육적인 성도: 변화를 시도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거부하는 사람 영적인 성도: 계속 성장하여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다시 질문하고 싶습니다. 사울처럼 좋은 환경에서, 폭넓은 학문을 배우면 뭐가 달라지나요? 네 조금은 다른 이들보다 유리하겠지요. 초엘리트, 초고속승진, 성공을 했더니 사울이 행복해졌던가요? 삶의 참된 의미를 찾으셨나요. 무엇이 여러분들을 이런 자리까지 몰아넣었는가요? 본문에 등장한 사울이라는 청년을 한 번생각 해 봅시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그가 행복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남을 옥에 가두고, 남을 죽이는 데 가담하며, 자신이 확신했던 신념을 지켰더니 만족했나요?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입학하고, 졸업을 했더니 그의 인생이 과연 탄탄대로가 되었던가요? 그가 참된 인생의 기쁨을 맛보고, 누렸던가요? 출세하여 초 고속승진했더니 진정으로 사람들이 사울을 존경하던가요? 위에서 열거했던 청년 사울이 그렇게 바랬던 것인데 단 한 가지고 해결한 것이 있었나요? 사울이 추구했던 것을 우리들은 또, 다시 아무 생각없이 그가 추구했던 것을 찾아서 어디론가 달려가시렵니까? 이것이 청년 사울의 과거였습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의 현재 주소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는 과연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까? (3-5절) 청년 사울의 과거는 참으로 화려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괜찮은 이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행복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교만하고, 스스로 크다 여겼지요. 자신의 노력과 실력으로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아니, 목사님! 자신의 노력과 실력으로 살아온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입니까? 왜! 한 사람 인생의 노력과 그 실력을 그렇게 편견을 가지고 판단하십니까? 그것이 오히려 잘못된 것 생각이 아닙니까? 라고 반문하실 분도 있을 줄 압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노력하고 실력을 갖추며 살아가는 것이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평생 자신의 노력과 실력으로 무엇인가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니깐요? 그것을 펴마 하려하는 마음은 추워도 없습니다. 노력하지 않고, 공짜 인생을 살려는 사람보다는 훨씬 훌륭하고, 칭찬을 받아 마땅한 인생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인생이 문제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자신이 무한한 존재인 양 살아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는 줄 아십니까? 마치 자신의 노력과 실력으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가지요. 이같은 행동이 문제인 것입니다. 사울이란 청년이 마치 이렇게 살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사도행전 9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는 눈이 멀었습니다. 앞을 볼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 아나니야를 사울이 머무는 곳으로 보내었고, 아나니야는 사울에게 안수하였지요. 그리고, 사울은 놀라운 영적 체험과 함께 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사울은 다시 광명을 찾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처음으로 영적인,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에 사울은 사도행전 13장부터는 그의 이름을 사울이 아닌 바울로 사용합니다. 사울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큰자, 교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헬라어로 작은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름에서도 보는 것과 같이 사울은 이전과는 전혀 인생을 살게 됩니다. 무엇이 그를 변화시킨 것인가요?

  전도자 아이언사이드(H.A.Ironside)가 분주한 북동쪽 도시의 한구석에서 설교하고 있을 때, 옷을 잘 차려입은 신사 하나가 다가와 비웃으며 조롱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언사이드는 이 신사가 대학교 교수요, 유명한 무신론자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이 교수는 모든 종교에 악의와 분노가 가득했는데 특히 기독교에 대해서 더욱 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언사이드가 계속 설교를 하자 이 사람은 반대 의견을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성경을 비평하면서 기독교인들을 바보, 멍청이들이라고까지 외치며 자신의 신념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냐? 하나님이 있다면 보여줘! 신이 있다는 증거를 내놓으라고 말이오.”,“하나님은 없다. 예수는 신화로 꾸며낸 인물이다.”며 외쳤습니다. 그래도 아이언사이드 목사가 계속 무시하고 설교를 진행하려고 하니 이 교수가 점점 도전적으로 자신의 지성과 논리에 답하라며 아이언사이드 목사님을 비웃어 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소리쳤습니다.“정말 자신이 있다면 나와 토론해 봅시다.”무신론자와 토론한들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목사님은 무시하려고 하니까? 교인들을 부치기면서 토론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전도자 아이언사이드(H.A.Ironside) 목사님은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좋습니다. 제가 당신이 도전에 응해주겠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토론장에 나올 때, 당신이 그렇게 믿고 있는 무신론 때문에 삶이 나아진 남녀 10명만 데리고 나오십시오. 무신론의 힘으로 자유케 된 알콜올 중독자, 마약중독자, 전에 창녀, 범죄자들이었으나 지금은 변화를 받아 사회적으로, 훌륭한 시민으로 사는 사람들을 데려오십시오. 사회적으로 버림받아 소망이 끊어지고, 절망가운데 있었던 자들중에, 무신론을 받아들여 그 구덩이에서 빠져나오게 된 그 어떤 사람이라도 좋으니 10명만 데리고 오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나는 복음으로 변화된 사람 200명 데리고 오겠소!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 바라고, 원하는 토론에 응해주겠습니다. 그랬더니 그 교만했던 교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를 박차고 주랭랑치듯이 살아졌습니다. 무신론으로 사람을 밖을 수 없습니다. 어떤 종교로도 사람의 인생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바울 사도는 언제부터 그의 인생이 바뀌었습니까? 바울 사도는 본문 13-15절을 통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13.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의 인생이 바뀐 것은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공부를 많이 해서가 아닙니다. 그가 좋은 환경 가운데 자랐기 때문도 아닙니다. 종교적 열정과 신념 그리고 인생에 대한 자기만의 확신 때문에 바뀐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노력과 실력으로 바뀐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사도행전 9장에서 자신이 핍박했던 예수 그리스로 다메섹 도상에서 직접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사람 아나니야를 통해서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경험한 후에서야 완전히 다른 인생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과연 바울사도의 현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그의 인생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요?

1)겸손하게 변화되었습니다. (5절)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2)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최고 여겼던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빌3:7-8절)“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3:7-8절)
3)자신의 성공을 자랑하는 인생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영광과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갈6:14,17절)“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6:14,17절)
4)어떤 형편에 있는지 자족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빌4:11-13절)“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1-13절)

11.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 12.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1.祝福に滿ちた 神の,榮光の福音によれば,こうなのであって,私は その福音をゆだねられたのです.
12.私は,私を强くしてくださる 私たちの主キリスト·イエスに 感謝をささげています.なぜなら,キリストは, 私を この務めに 任命して,私を忠實な者と 認めてくださったからです.
13.私は 以前は,神をけがす者,迫害する者,暴力をふるう 者でした.それでも,信じていないときに 知らないでしたことなので,あわれみを 受けたのです.
14.私たちの 主の この惠みは キリスト·イエスにある信仰と愛とともに ますます滿ちあふ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
15.「キリスト·イエスは,罪人を 救うためにこの 世に 來られた.」ということばは,まことであり,そのまま 受け入れるに 値するものです.私は その罪人のかしらです.
Date : 2022-08-11 06:08:56    Read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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