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고이와성산교회
 
 
 
2023/10/22
룻1:1-22절 / 개혁을 위한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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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예수
Subject     룻1:1-22절 / 개혁을 위한 결단
성경: 룻1:1-22절        제목: 개혁을 위한 결단
설교: 김 병철 목사,  2023년 10월 22일(주일 낮)

  서  론: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은혜의 말씀에 제목은 "개혁을 위한 결단"입니다. 이 말씀을 읽고 듣고 보는 가운데 성령하나님의 폭포수와 같은 은총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임하시기를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939년 7월 미국 맨해턴 건너편 항구 호보큰에서 독일로 가는 배에 오를 젊은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이 젊은 신학자는 막 박사학위를 받은 독일인으로 독재자 히틀러와 맞서기 위해 귀향길에 오른 것입니다. 주위에서 사람들은 만류했습니다. "여기에 있으면 편할 것이라고." 그러나 이 젊은이는 순교를 각오하며 떠났고 6년 후인 1945년 나치 정권에 의해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이 젊은 신학자가 바로 "본회퍼"입니다. 본회퍼는 귀향길을 떠나기 전 기도하기를 "주여. 나로하여금 변화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게 하소서."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본  론: 룻기서는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였습니다. 유다 땅, 베들레헴에 흉년이 찾아왔고, 가족들 모두가 모압이라는 땅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두 자녀가 모압 여인들과 함께 결혼을 했습니다. 그 가정이 그 유명한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가정입니다. "나오미"라는 이름의 뜻은 "기쁨. 즐거움"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의 뜻이 무색할 정도로 그 가정에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모압에 들어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습니다. 나오미는 외로움을 견디면서 그 속에서 아들 둘을 결혼을 시킵니다. 그리고 결혼한 지 10년쯤 되었을까? 아들 둘 말룐과 기룐이 모압 땅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니 가정에 남자라고는 단 한 명도 없고 오직 여자들만 있게 되었습니다. 과부 세 명만 달랑 남았습니다. 그러니 나오미의 이름이 유다 땅 베들레헴을 떠날 때, 기쁨, 즐거움이었는데, 모압 땅에서 유다 땅으로 들어올 때, 나오미가 고백하기를“나의 이름을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마라"의 뜻은 괴로움입니다. 룻기1장 20절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를 떠나면 당분간은 편안할지는 몰라도 결국은 괴로움만 더하게 된다는 사실을 일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오미는 유다 땅 베들레헴을 떠난 지 10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그에게 걸림돌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두 며느리였습니다. 이 며느리들은 모압 사람들인데 이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자니 이들이 고향을 떠나 유대 땅에 들어가 잘 적응할지, 적응을 잘한다고 하더라도 세 여자가 베들레헴에서 무엇을 먹고살지 앞이 막막했습니다. 혼자의 몸도 건사하기 힘든데, 세 여자가 고향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먹고 산다는 말입니까? 나오미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나오미는 며느리들을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려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오늘 본문 내용이 며느리들에게 자신의 태어난 고향과 신에게로 돌아가라고 강권합니다. 그때 두 며느리의 반응의 대한 내용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첫째, 오르바와 룻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오르바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떠났고,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붙잡았습니다. (14절) 나오미가 두며느리들에게 권하는 내용이 14절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오르바와 룻의 차이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며느리‘오르바’은 마치 기다렸던 것같이 시어머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시어머니의 입을 맞추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15절“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오르바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갔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들은 오르바의 행동을 정죄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에 우리들도 그런 상황이었다면 우리들 또한 그렇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원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시어머니가 강권하여 권하니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기에서의 오르바의 행동은 어떻게 보면 현명한 행동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에 그의 이름은 성경에서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똑똑하고, 현실감 있게 행동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믿음으로 행동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개인적으로 또는 공동체으로도 엄청난 실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중요한 것일수록 현실과 감정에 휩싸여서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냉철하게 생각하면서도 믿음으로 행동하고,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모두는 성인들입니다. 행동의 결과는 우리들 자신이 책임을 져야하고, 때로는 공동체가 그 아픔과 고통을 함께 겪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에 나오는 오르바는 현실주의자였습니다. 현실과 감정에 충실했던 사람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룻의 경우는 어떤 결정을 내렸습니까? 14절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고 했습니다. "그를 붙좇았더라."를 히브리어로 [다베카]로서“찰싹 붙다”는 뜻입니다. 우리 표현으로는 거머리처럼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합니다. 내가 이분을 놓치면 죽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찰거머리처럼 붙들고 나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물론 시어머니와 함께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어머니를 봉양해야 하는 일이 쉽겠습니까? 그의 모든 수발을 들어야 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희생을 각오한 결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룻은 인정에 끌려 시어머니 나오미를 좇은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의 신앙 고백을 16-17절“16.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모름지기 주님께 껌딱지처럼 딱 달라붙어 다니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주님이 쉬는 곳에서 나도 쉬며, 주님이 먹고 마시는 곳에 나도 그곳에서 먹고 마시며 언제 어디서나 그분과 함께 거하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한번은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나를 버리리라. 그때 제자 중 베드로가 말합니다. 주님 다른 사람은 다 주님을 버릴찌라도 나는 주를 버리지 아니하며 죽을지언정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호언장담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보면 베드로는 어떻게 행동을 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메달리기 위해서 법정에 끌려갈 때, 주님 곁을 좇아가기는 갔지만, 멀찍이 쫓았더라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4장 54절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하속 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예수님을 쫓아 가되, 바싹 붙어서 쫓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 자주 시험에 드는 분들을 보면 멀찍이, 대충 주님을 쫓아갑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고 형식적이거나 아니면 신앙생활을 오래했다손치더라도 충만하지 않거나, 자기 주관대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시험에 드는 경우를 봅니다. 왜 그럴까요? 멀찍이 쫓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신앙생활 하는 분들은 시험에 드는 경우가 드뭅니다. 룻처럼 시어머니를 따라가되 찰거머리처럼 쫓아가듯이 예수님을 거머리처럼 쫓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믿음의 결단이 없이는 영적인 신분이 바뀔 수가 없습니다. (15절) 오르바와 룻은 어디 사람입니까? 모압 사람입니다. 모압은 어떤 땅입니까? 모압 하면 생각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소돔과 고모라 땅을 생각이 나실 것입니다. 또한, 롯을 생각해야 합니다. 모압은 이방 사람의 대표적인 존재가 아닙니까? 구약성서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생질 롯이 소돔과 고모라 땅이 망할 때, 롯과 그 가족이 피난해서 나옵니다. 그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되었고, 딸들과 아버지가 소알이라는 곳에 도착하게 됩니다. 놀랍게도 소돔과 고모라 땅에서 피난 올 때 술을 가지고 나온 것 같습니다. 그때, 소알이라는 곳에서 아버지와 큰 탈과 관계에서 나온 족속이 모압인 것입니다. 또한, 작은 딸에게서 나온 족속이 암몬 족속입니다. 그런데 그 족속에게 가서 결혼하고 그 족속의 자손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룻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성경에서 세상을 표현한 대표적인 곳이 모압인 것입니다. 모압인은 대개 이스라엘의 적이어서 사울과 다윗에게 격파되었습니다(사무엘상 14:47, 사무엘하 8:2).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룻이 죄악의 도시에서 살았던 모압인이었다는 것입니다. 룻은 죄악의 도시에서 살았고 죄악의 도시인 모압에서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소속을 옮기게 됩니다. 오르바의 경우는 그냥 모압 지방에 머물렀고, 룻만 그의 시어머니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룻이 얼마나 귀한 결단을 했는지 모릅니다. 다시 말하면 바른 결단, 믿음의 결단으로 말미암아 신분의 변화가 왔다는 뜻입니다. 오르바의 경우는 모압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룻의 경우는 어머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엄청 차이가 나게 된 것입니다. 이때 이후로 오르바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룻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영적인 신분의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개혁을 위한 결단은 마귀의 땅에서, 마귀의 백성에서, 하나님의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신분 변화가 찾아온 것입니다. 이같은 놀라운 축복은 바로 믿음의 결단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축원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바른 신앙 고백이 룻에게 있었습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내가 섬기는 너의 신에게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때, 룻은 이렇게 신앙고백을 합니다. 16절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어머님께서 믿으시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이 신앙고백은 세상 마귀에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으로 변화하는 놀라운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룻의 이 신앙고백은 지금까지 조상 때부터 섬겼던 신을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자신이 지금까지 의지했던 것을 버리겠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은 무엇을 의지했습니까? 여러분들이 그렇게도 애지중지했던 있다면 그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자신, 부모, 남편, 아내, 자식, 돈입니까? 출세와 성공입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그 같은 것을 회개하고, 무너뜨려야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화)야곱에 얍복 강에서 하나님의 만남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거듭나게 됩니다. 그는 영적으로 거듭납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하기를 내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음이라. 아멘. 영적인 거듭남이 있어야 만이 영적인 새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거듭남의 역사가 없으면, 진정한 새 생활을 하기라 불가능한 것입니다. 룻은 유대 땅으로 들어가기 앞서 자신의 영적 신분을 분명히 했다는 사실에 저와 여러분들은 귀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에서, 마귀에 자녀에서 거룩함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멘.  

  셋째, 올바른 믿음의 결단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16-17절) 룻이라는 여인은 태어나서 모압이라는 땅을 단 한 번도 떠나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외국에서 살고 계시니까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처음 일본이라는 땅에 발을 디딜 때, 친척, 가족,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누가 나를 반겨 줄까? 나의 도움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홀로 있어야 한다는 것은 굉장한 모험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아마도 룻도 꼭 이와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땅에 들어가서 고생할 것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돕고 있다면 이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룻은 담대하게 친정어머니를 떠나겠다는 것입니다. 형제들을 떠나겠다는 것입니다. 평생동안 발붙이고 살았던 모압 땅. 고국을 떠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버틴 목이 되어줄 남편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그럴수 있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가 남자였다면 이같은 결단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자의 몸으로써 이렇게 엄청난 결단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에게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기 때문에 아닌가 싶습니다.

  룻은 새로운 미지에 세계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워했다손치더라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올바른 믿음의 결단 때문입니다. 올바른 믿음의 결단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개혁을 하는 사람들이 두려움이 있어도 중단하지 않는 이유가 어디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그것이 옳다고 믿는 신념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신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믿음의 근거한 결단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룻에게 여러 가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견디고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믿음으로 행동하고,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상식적이면서도 인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도 사랑하지만, 내 옆에 있는 사람도 소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엇이라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한부러 행동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그럴수는 없는 것입니다. 룻은 나오미가 시어머니고 룻은 그의 며느리 이 사실은 변화지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그를 모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중에 보아스를 만났을 때, 보아스로부터 칭찬을 듣는 하나의 좋은 예가 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바른 믿음의 판단, 결단은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추진할 때, 이 일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어려움이 와도, 힘든 일이 있다손치더라도 믿음의 사람들은 기꺼이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11장 38절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롬8장35-37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Date : 2023-10-22 13:36:43    Read : 17 
 주일 설교 동영상 (유투브에 들어가셔서 동경성산교회 치시면 주일설교를 보실수 있습니다. )
작은예수
 눅14:7-14 /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작은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