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고이와성산교회
 
 
 
2024/07/21
막5:21-43절,눅8:40-56, /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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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예수
Subject     출2:1-10절 / 섭리 속에 기적
성경: 출2:1-10절      제목: 섭리 속에 기적
설교: 김병철 목사 2024년 6월 9일(주일설교)

  서   론: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은혜의 말씀에 제목은 "섭리 속에 기적"입니다. 이 말씀을 읽고 듣고 보는 가운데 성령 하나님의 폭포수와 같은 은총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임하시기를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일본의 유명한 종교가인 우찌무라간조에게 어떤 대학생이 와서 선생님, 이 믿기 어려운 기적은 자꾸만 믿으라고 하십니까? 제가 성경은 공부하겠는데 성경에서 기적 같은 이야기만 빼놓고 믿으면 안 될까요? 예수께서 물을 걸어가셨다는 이야기, 부활했다는 아야기, 그런 이야기를 빼놓고 성경공부를 할 수는 없을까요? 이때 우찌무라간조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학생 성경에서 인간이 이성으로 수락하기 어려운 그런 기적들은 다 제거하고 성경을 공부하면 성경에서 꼭 두 가지가 남네, 뭐가 남습니까? 성경의 앞 겉장과 뒤 겉장만 남아 있네.”라고 대답했다. 학생은 묻기를 왜 그렇지요?

  창세기 1:1 성경은 어떻게 시작됩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말씀으로 온 주주 만물을 창조했습니다." 기적이죠. 성경 마지막 계시록의 구절은 어떻게 끝납니까? "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그분, 심판 주로 다시 오십니다. 이것이 기적이 아닐까요. 기적을 다 빼놓고 믿으려고 하고 보세요. 뭐가 남아요? 성경의 겉장과 뒷장 외에 남지 않아요. 이처럼 성경은 기적에 연속이고,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기적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기적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 기적의 사건 속으로 함께 들어가 봅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은혜, 기적을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본   론: 당시 애굽에서는 산하 제한 정책을 썼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먼저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들어섰고, 그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번성으로 인하여 애굽의 인구보다도 더 많아, 혹 구테타를 이르킬 수 있다고 생각해서 산하 제한 정책을 한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출1:7-10절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 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 그가 그 신민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산하 제한을 하는 시기에 모세의 아버지 아므람과 요게벳 사이 자녀가 출생하게 되었으니 그 이름이 바로 모세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모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레위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아버지는 아므람, 어머니는 요게벳 그리고 슬하에 첫째가 미리암 둘째 아론 셋째가 모세입니다. 아론의 나이는 당시 3살입니다. 모세는 나이는 3개월이며 그의 누이는 미리암은 최소한 13-14세 이상은 정도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왜냐하면, 바로의 딸인 공주에게 가서 모세를 위해 유모를 찾아 줄 정도의 나이였으니까 아마도 그 정도의 나이가 되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성경은 미리암의 나이에 대해서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째든 그의 가족관계가 그랬습니다. 모세뿐만이 아니라 아론도 무사할 수 없는 아이입니다. 당시 아론의 나이가 3살이면 죽을 수도 있었는데 살아 있었던 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라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훗날에 아론은 이스라엘에 초대 대제사장이 되지 않습니까? 만약에 죽으면 그는 대 제사장으로써 또한 모세의 대변자로서 쓰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같은 본문의 배경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어떤 모세와 그 가정에 어떠한 기적을 베풀어 주셨는가를 생각해 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첫째, 석달 동안 들키지 않았고, 키울수 있었던 것이 첫 번째 기적이요. 축복입니다. (1-2절)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요사이 우리 교회에 아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갓난 아기가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김이슬 집사님뿐 아니라 여러분들이 빨리 자녀들을 많이 갖기를 축복합니다. 육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분들은 영적 자녀들이라도 많이, 출산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도 민결이나, 시온이처럼 어린아이 정도가 되면 억압을 해서라도 조용히 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한 100일 정도의 아기에게 뭘 기대 하겠습니까? 딱 백일 정도 되는 아기는 배고프면 울고, 오줌, 똥 싸면 울며, 추우면 울고, 더워도 울고, 잠자고 싶은데 잠잘 수 있는 환경이 안 되도 우는 것입니다. 온통 아기의 언어는 우는 것으로 통화합니다. 그러니 100일 동안 울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이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의 귀를 막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갓난아이가 울면 부모는 사실 대책이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매일 울어되는 아기를 어떻게 3개월 동안이나 들통나지 않게 했을까? 이것도 미스테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로 지켜주시지 않으면 안 되는 기적입니다. 만약에 아이를 계속 키웠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래도 계속 지켜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사용하니깐? 하나님께서 또 다른 방법으로 모세를 키우셨던 것입니다. 아이가 울어도 들리지 않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기적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니 하루 이틀이어야지 3개월을 동안 사람들이 아이의 울음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는 것이 말이 되나! ...그러니깐, 이솝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지요. 라고 말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손 치더라도 주변에 히브리인들이었다면 어쩌면 이해고, 숨겨 주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이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에 의한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나라를 위해 때로는 사람의 눈과 코와 귀, 입을 막으실 수도 있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생겨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화) 중국에서 사역을 하셨던 모 선교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과거 약 2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중국은 지금도 성경책이 귀하다고 합니다. 20년 전은 말할 것도 없이 더 귀하지요. 그래서 선교사님이 성경책을 여행용 가방에다가 잔득 싫어서 가지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안국에 사람들이 짐을 검사하는데 이 선교사님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 선교사님 한국 공항에서부터 중국 공항을 통과하기 전까지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던지 하나님께서 응답을 하셨습니다. 그가 기도한 내용이 이렇습니다. "하나님 나 걸리면 죽습니다. 하나님 나 걸리면 죽습니다. 이 성경책 통과되면 중국에 있는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에 영의 양식이 됩니다.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답니다. 그랬더니 공안국에 사람들이 짐을 검사하는데 성경책이 들어 있는 가방을 조사하면서도 책을 보고도 그냥 넘어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했다는 이야기를 선교사님께 직접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중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들어가는 선교사님을 긍휼히 여기시고 중국에 있는 영혼들을 긍휼히 여겨서 공안국 사람들의 눈을 가리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오늘날도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기적이 필요할 줄 합니다.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기적이 매일 같이, 연속적으로 우리들의 삶에 과정속에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서 말하게 하시고, 필요를 따라 도우시며, 때로는 피할 길과 가야 할 길을 잘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니다. 그때그때 하나님의 기적이 현장이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모세는 여자 때문에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 요게벳에 의해 태어났습니다. 죽어야 할 그를 살려 주기 위해 그의 누이 미리암이 도와주었지요. 또한, 이방 여인인 바로의 공주에 의해 죽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미리암이 속에 해 주신 준 유모가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입니다. 그리고는 모세가 성인되도록 안전하게 키워준 자가 바로의 공주(핫셉수트)였습니다. 이후에 모세가 광야로 나아가 있을 곳이 없을 때 모세의 아내 십보라를 만나 결혼하였고, 결국 처가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사실 모세는 여인 때문에 살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사람을 붙여주셨습니다. 이것 또한, 은혜, 섭리에 의한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여인으로부터 태어나 여인의 의해 도움을 받고 여인에 의해 자라고 여인의 의해 생명을 보존하게 되었으며 그의 아들까지도 어머니 요게벳에 의해 생명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둘째, 히브리인의 아이임을 알고도 죽이지 않았다. (5-8절) 바로의 공주는 모세가 히브리인임을 알고도 살려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양자로 받아드렸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바로의 공주는 왕의 명을 거절한 것입니다. 또한, 많은사람들이 주목하고 있으매도 불구하고 모세를 자신의 양아들도 받아드렸다는 것은 그만큼의 바로의 공주의 권세가 있었다는 것과 또한 바로가 자신의 딸인 공주를 사랑했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것도 있을 것입니다. 바로의 공주는 애굽의 제18왕조의 세 번째 계승자인 투트모세 1세와 아멘호텝 1세의 사이에서 태어난 무남독녀 핫셉수트입니다. 그러니까 법적으로 그는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으나 투트모세 2세와 결혼하여 그 왕위 계승권을 남편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러나 핫셉수트에게는 아들이 없이 어린 딸만 있었으며 급기야 그 어린 딸도 어려서 죽어버렸습니다. 그 이후 공주의 마음은 허탈한 심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태어난 주변 상황이 이렇습니다. 애굽의 유일한 젖줄인 나일강은 애굽인들에게 있어서 모든 풍요와 건강을 제공하는 성역으로 간주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강 유역에는 여인들을 위한 특별 구역을 설치해 두고 일종의 종교의식으로서 또는 다산(자식을 많이 낳는 것)과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목욕을 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때, 핫셉수트 바로의 공주가 나일강에 목욕하러 간 것입니다. 그런데 갈대 상자 속에 있는 모세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상자 속에 있는 어린 모세가 울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바로의 공주에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셨고 자녀가 죽고 난 후에 그 허탈감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바로의 딸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계획을 이루시는 보조자의 역할을 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사역을 위해서 사람들을 세우시고, 그들이 사명을 다하기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모세를 적의 소굴로 들어가게 하시고, 적의 손에 키우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또한, 모세는 바로를 피해 미디언 광야에서 40년간 방랑 생활을 했는데 그것이 우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후에 광야에서 모세는 빛을 발할 수가 있었습니다. 광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 모세였기 때문입니다.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다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명 자는 어떤 상황에 처에 있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그 사명이 다하기까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히브리 사람의 자식임을 알고도 양자로 받아드렸다는 것이 두 번째 기적입니다. 때로는 인간의 이성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예화) 위대한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에게 후레드릭 미코니우스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널리 알려진 사람은 아니었으나 루터에게는 더할 수 없는 격려와 위로와 기쁨을 주는 친구였습니다. 종교 개혁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무렵, 후레드릭은 불치의 병에 걸려 죽음을 앞에 두고 사랑하는 친구 루터에게 최후의 유서를 보냈습니다. 이를 받은 루터는 깊은 고뇌에 빠졌으나 곧 기도하기 시작했고, 하루를 온전히 기도함으로 성령께서는 사랑하는 친구가 아직도 죽을 때가 안되었다는 사실을 루터의 마음속 깊이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루터는 후레드릭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에게 살 것을 명령한다. 왜냐하면! 종교를 개혁하는 하나님의 사역에 있어서 아직도 네가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결코, 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나로하여금 듣지 않게 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기에 나는 하나님의 뜻이 네게서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로움을 추구하므로 이를 확신한다." 이 편지를 받은 후레드릭의 병은 신속히 회복되어 의사가 선언한 불치의 병에서 소생되어 6년을 더 살며 루터를 도와 종교 개혁의 위대한 사업을 완성할 수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에 사명이 무엇입니까? 사명을 모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는 사명에 살고 사명에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셋째, 바로의 딸의 아들이 된 것이다. 이것이 세 번째 기적입니다.(8-10절)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역을 위해서 믿음의 사람들을 높이 세우셔서 일하게 하신다. 종의 신분이 왕자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운명이 이렇게 될 줄 몰랐을 것입니다. 종의 신분으로 태어난 것도 몰랐을 것이고 또한 그가 얼마 후 애굽이라고 하는 거대한 나라의 그것도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될 것이라는 것도 몰랐을 것입니다. 아니 바로의 공주 또한 자신이 모세의 양 엄마가 될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는 아셨을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렇습니다. 당신의 약속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셔서 가나안이라는 땅으로 인도하기 위한 계획의 한 단면으로 바로의 공주도 선택하시고 모세로 하여금 그 고난을 겪게 하신 것입니다. 모세는 졸지의 애굽의 왕자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다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이와 비슷한 사람이 있으니 그가 에스더입니다. 그도 또한, 포로였습니다. 당시의 왕비는 와스디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폐위되고 후에 이스라엘 백성인 에스더가 왕비에 자리에 오르지요. 그러나 에스더는 왕비에 자리를 탐하지 않고 죽기를 각오하고 죽음 위기에 처한 민족을 위해 왕비의 자리를 기꺼이 내려놓고 왕 앞으로 나아가 백성을 구합니다. 그렇습니다. 모세도 이와 비슷하지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잠시 죄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자청했던 사람 모세입니다. 이 얼마나 멋있습니까?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시기 위해서 훈련을 무려 80년 동안 하셨습니다.

모세의 인생을 흔히 3단계로 나눕니다.
첫 번째 단계는 왕궁에서 40년의 훈련단계입니다. 왕궁에서 언어에 능통한 사람이 되었고 무술을 익히는 군인으로서 강인한 체력을 단련하는 시기였습니다. 한마디로 실력과 체력을 연마했습니다. 사도행전 7:22절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광야에서의 40년 훈련단계입니다. 한마디로 현장에서 직접 뛰려면 현장을 알아야 일을 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이끌기 위해서는 40년 동안의 현장 학습하는 단계였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단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직접 광야로 이끌어 경험하고, 실천하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요단강 앞까지 인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역을 위해서 모세를 바로의 공주에 아들로 삼으시고 훈련케 하셨듯이 오늘날도 저와 여러분들을 당신의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훈련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들이 있는 처소에서 하고있는 모든 것이 훈련의 과정임을 믿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을 낮추시고, 높이시는 이유도, 실패와 성공하게 하시는 이유도 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위해 준비시키고 있는 것임을 믿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실력과 영력을 준비시켜야 합니다. 대체로 믿는 사람들은 실력이 있으면 믿음이 없고, 믿음이 있으면 실력이 부족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전문적 지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 = 전문적 지식(실력)을 갖추어서 주님께서 쓰시고자 할 때, 이사야 선지자처럼, 에스더 처럼, 모세처럼‘주님 주의 종이 여기 있나이다 나를 써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과 실력과 영력, 능력을 겸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결 론: 말씀을 맺기를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기적은 오늘 날에도 저와 여러분들의 삶을 속에서도 지속적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역사는, 사명을 위해 앞으로 전진하고 또 전진하는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 역사하실 것입니다. 믿습니까?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계속해서 기적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서, 그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계속해서 이루어 나아가실 것입니다.

1.さて レビの家のひとりの人が レビ人の娘をめとった.
2.女は みごもって 男の子を 産んだが そのかわいいのを 見て 三か月の間 その子を 隱しておいた.
3.しかし もう 隱しきれなくなったので パピルス 製のかごを 手に 入れ それに =靑と 樹脂とを 塗って その子を 中に入れ ナイルの 岸の葦の茂みの中に 置いた.
4.その 子の姉が その子がどうなるかを 知ろうとして 遠く離れて 立っていたとき
5.パロの娘が 水浴びをしようと ナイルに 降りて 來た. 彼女の侍女たちは ナイルの川邊を 步いていた. 彼女は 葦の茂みにかごがあるのを見はしためをやって それを 取って 來させた.
6.それをあけると 子どもがいた. なんと それは 男の子で 泣いていた. 彼女はその子をあわれに 思い 「これはきっと ヘブル 人の 子どもです.」と 言った.
7.そのとき その 子の姉が パロの 娘に言った. 「あなたに 代わって その子に 乳を 飮ませるため 私が 行って ヘブル女のうばを 呼んでまいりましょうか.」
8.パロの娘が「そうしておくれ.」と 言ったので おとめは 行って その 子の母を 呼んで 來た.
9.パロの娘は 彼女に 言った. 「この子を 連れて 行き 私に代わって 乳を 飮ませてください. 私があなたの 賃金を 拂いましょう.」それで その女は その子を 引き 取って 乳を 飮ませた.
10.その子が 大きくなったとき 女はその子を パロの娘のもとに 連れて 行った.その子は 王女の 息子になった. 彼女はその 子を モ―セと 名づけた. 彼女は 「水の 中から 私が この子を 引き 出したのです.」と 言ったからである.

창세기1:1절 初めに 神が天と地を 創造した.
출애굽기 1:7-10절 / 7.イスラエル人は 多産だったので おびただしくふえ すこぶる 强くなり その 地は 彼らで 滿ちた.8.さて ヨセフのことを 知らない 新しい 王が エジプトに 起こった.9.彼は 民に 言った.「見よ.イスラエルの民は われわれよりも 多く また 强い.10.さあ 彼らを 賢く取り扱おう.彼らが 多くなり いざ戰いというときに 敵側についてわれわれと 戰い この 地から 出て 行くといけないから.」
사도행전7:22절/モ―セは エジプト人のあらゆる 学問を教え込まれ ことばにも わざにも 力がありました.

1.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어
2.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3.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강가 갈대 사이에 두고
4.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5.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강 가를 거닐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6.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7.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8.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9.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10.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Date : 2024-06-09 08:56:17    Read : 10 
 (テモテⅡ)딤후2:1-10절, / 면류관의 주인은 충성
작은예수
 일일 부흥회 - 행2:1-13절 / 신나는 신앙생활
작은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