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고이와성산교회
 
 
 
2019/11/12
마태복음 18:15-35절, 제목: 어느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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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예수
Subject     마태복음 18:15-35절, 제목: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성경: 마18:15-22절,      제목: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설교: 김 병철 목사, 일시:2019년 10월 27일(주일 날 설교)

  서  론: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은혜의 말씀에 제목은“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기를 소원합니다. 이 말씀을 읽고 듣고 보는 가운데 성령 하나님의 폭포수와 같은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 심령 가운데 넘쳐나시기를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고도원 아침’이라는 곳에서 가끔씩 글을 보내 주시는데 너무나 좋을 글이 있어서, 여러분들에게 소개하면서 말씀의 서두를 장식하고자 합니다. 고도원 아침에서 보내 준 글의 제목은 멋지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운명은 비록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길에 우리를 데려다 놓지만, 우리는 그것을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 길은 황량하고 인적이 없는 길일 수도 있지만, 제대로 개발되지 않은 만큼 당신에게는 더 큰 실력을 발휘할 공간이 될 수도 있다. 가장 나쁜 결과는 당신이 길을 탐험하러 나서지 않는 것이다. 왁자지껄한 길이라고 해서 반드시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이어질 거라는 보장은 없다. 또한 황량한 길이라고 해서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다. 류웨이의《죽거나, 멋지게 살거나》중에서 나온 글입니다. 그렇습니다. 두 팔이 없는 발가락 피아니스트 류웨이는 자신의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인생에 두 갈래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죽거나, 멋지게 살거나." 운명이 아무리 황량하고 인적 없는 길로 데려간다고 해도 가장 최악인 죽음을 피해갔으니 멋지게 살아보겠다고 말하는 류웨이.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가오지도 않은 내일을 두려워하여 새로운 비전, 도전, 미래의 길을 나서지 않았던 우리들의 자세를 반성해 보았으면 합니다.  

  오늘은 지난 주 주보에 광고했듯이 사무엘하 강해가 아니라 마태복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물론 지난주 말씀과 연계해서 들으면 더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본문 내용은 용서의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 본문을 준비하면서 자신 인생을 멋지게, 행복하게,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 나 스스로가 만들어가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죽거나, 불행하거나, 재미없는 인생을 사는 것조차도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의 대한 근거로 본문 18, 35절“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용서라는 단어 대신 행복, 즐거움, 축복이라는 단어를 넣어서 생각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올 것입니다. 구약성경 민수기 14:27-28절“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들의 말을 하나님께서 듣고 계시고, 들으신 말씀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들의 인생이 결정이 되어 진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나 행동이 얼마나 중요하고, 때로는 무섭고 두려운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하며, 반성하게 됩니다.  

  '형제가 네게 죄를 짓거든 너는 그와 단둘이 만나 잘못을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너는 네 형제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듣지 않으면 이방인처럼 여기라는 것입니다.’고 하면서 성경은 이렇게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너희가 땅에서 처벌하면 하늘에서도 처벌할 것이며 너희가 땅에서 용서하면 하늘에서도 용서할 것이다. 내가 다시 말한다.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마음을 같이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나도 그들 가운데 있느니라. 고 했습니다.

  본문 15-20절 볼 때에 자치 잘못 보면 마치‘죄를 범한 자를 권면하면 처벌을 받는 다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아무 생각 없이 읽으면 그러나보다 생각하겠지만, 자세히 보면 다릅니다. 15-17절 내용인 즉 죄를 범 한자를 권면할 때에 권면을 들으면 친구를 얻는 것이고, 듣지 않으면 두 세 증인을 데리고 가서 증명하고, 그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말하고 그리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처럼 취급하라.’그리고 나서 18-20절이 연결되는데 느닷없이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말은 분명히 말하노니. 라는 말입니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말을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본문 17절과 18절 사이에 이와 같은 구절이 들어가야 합니다.‘죄를 범한 자에게 권면을 했을 때에 권면을 듣고, 용서를 구하면 하늘에서도 용서를 받고, 권면을 듣고 죄를 뉘우치지 않는다면 하늘에서도 처벌을 받을 것이다.’라고 해야지 문맥상 매끄러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태는 이와 같은 내용을 전혀 언급하고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21절에 바로 용서에 관련된 부분으로 넘어 갑니다. 잠깐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눠봅시다.

  형제가 내게 죄(잘못)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를 해 주어야 합니까? (21-22절)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기를 형제가 내게 잘못을 하면 몇 번이나 용서를 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 정도 용서해 주면 되겠습니까? 예수님의 대답하시기를“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숫자상으로 490번을 용서하라는 말인데 무한적으로 용서를 하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세상에 내가 성인도 아니고, 아니 성인이라도 해도 그것은 불가능한 것 같은데 우리 같은 일반 성도에게 이와 같이 무한적으로 용서하는 말씀은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명령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 부분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생각할 때에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명령을 하셨다면 그 명령이 누구를 위한 명령일까? 타인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을 자신을 위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 자신들을 위한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심술궂으신 분이라서 우리를 골탕 먹이시려고 그렇게 터무니없는 명령을 말씀하신 것일까요? 그러 실리는 만무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위한 명령일 것이 정확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의 자녀들을 위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그렇다면 우리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나를 위하는 일이라면 우리가 어떤 일이라도 해야 맞지요. 왜냐하면 인간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입니다. 이기적인 존재라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위하는 일이라면 양재물이라도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무한적으로 용서를 하라 명령하셨는데 이것 또한 타인을 위한, 용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용서라는 말씀입니다. 용서하지 않는 나의 마음은 지옥인 것 아시지요. 상대방은 울룰랄랄하고 살아갑니다. 용서하지 않는 내 마음만 지옥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타인을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잘못한 것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어떨 때에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나는 언제나 피해자이고 늘 괴로워하며 사는데 가해자는 늘 당당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을 볼 때에 화가 나기고 합니다. 그래서 나 자신도 상대방이 상처를 받는 안 받던 상관하지 않고, 내가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 하고 싶은 대로 아무렇게나 행동하면서 살고 싶은 충동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한번 살아보십시오. 여러분들의 마음이 어떨까요? 그다지 마음이 편안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원래 여러분들의 옷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우리들은 성숙과 미성숙의 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른이 아이들과 싸웁니다. 기어코 욱이면서까지 아이와 싸워 어른이 이겼다고 합시다. 그리고는 너무나 좋아하는 철부지 어른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걸 보고 있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말할까요?“어른이나 얘나 똑 같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나이를 어디로 먹었는지..참나 원...헛먹었어! 헛먹었어!”라고 말을 할 것입니다. 이 말이 칭찬입니까? 아니면 흉을 보는 말입니까? 흉을 보는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용서하라. 그것도 무한적으로 용서하라는 것은 정말 글자그대로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나에게 오히려 유익이 되는 것이라면 그 유익을 따라서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 당사자의 잘못된 행동의 대해서는 반드시 그 책임은 하나님께서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값을 수 없는 은혜를 입은 자의 선택은 무엇인가? (23-35절) 23-35절까지의 내용은 베드로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알기 쉽게 설명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흔히 일 만달란트 빚진 자와 백 데나리온 빚진 자의 이야기입니다. 먼저 백 데나리온은 어느 정도의 값어치인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입니다. 그러니깐 백 데나리온 이라함은 약 삼개월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을 수 있는 돈입니다. 한 달 월급이 30만 엔 정도라고 한다면 약 100만 엔 정도의 금액입니다. 이것도 적은 돈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일만 달란트라고 하면 어느 정도일까? 먼저 한 달란트를 계산해 봅시다. 한 달란트를 모르려면 데나리온을 무려 6000 데나리온을 모아야 한 달란트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1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으면 365데나리온입니다. 10년을 모으면 3650데나리온입니다. 20년 모으면 7300데나리온입니다. 한 마디로 한 달란트란 20년 동안 저축하고 또 저축하여 모아야 손에 넣을 수 있는 금액이 한 달란트입니다. 두 달란트라면 40년 모아야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섯 달란트는 100년을 모아야 손에 넣을 수 있을 만큼 큰돈입니다. 여러분 고작 다섯 달란트도 100년 동안 모아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열 달란트면 200년 벌어야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백 달란트면 2만년 동안 벌어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백 달란트만 이야기했는데도 이 정도라면 천 달란트 일 만달란트 하면 어느 정도일까요? 저는 머리가 나빠서 계산을 못하겠어요.

  한 마디로 계산할 수 없는 금액이 일만 달란트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표현하자면 계산할 수 없고, 우리가 노력해도 갚을 수 없는 은혜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은혜를 입은 자,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자가 저와 여러분들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 수억 년을 살면서 노력하고, 봉사하며, 은혜를 갚으려고 해도 갚은 수 없는 은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므로 인하여 죄에서 용서함 받고, 영원한 천국, 영원한 구속의 은혜를 받은 축복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은 매일, 매주, 매달, 매년 아니 죽을 때까지 감사, 감사, 또 감사, 감격, 감격, 또 감격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이 말에 대한 이의가 있으신 분계십니까? 그 어느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본문 비유를 설명합시다. "하늘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습니다. 어떤 왕이 자기 종들과 셈을 밝히려 하였습니다. 셈을 시작하자 일만 달란트나 되는 돈을 빚진 사람이 왕 앞에 끌려왔습니다. 그에게 빚을 갚을 길이 없었으므로 왕은 '네 몸과 네 처자와 너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빚을 갚아라.'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종이 엎드려 왕에게 절하며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곧 다 갚아드리겠습니다.' 하고 애걸하였습니다. 사실은 갚을 길이 없는 종이었습니다. 왕은 그를 가엾게 여겨 빚을 탕감해 주고 놓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밖에 안 되는 빚을 진 동료를 만나자 달려들어 멱살을 잡으며 '내 이놈아 빚을 갚아라.' 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 동료는 엎드려 '꼭 갚을 터이니 조금만 말미를 주게 조금만 더 참아주게.' 하고 애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 동료를 끌고 가서 빚진 돈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어두었습니다. 다른 종들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분개하여 왕에게 가서 이 일을 낱낱이 일러바쳤습니다. 그러자 왕은 그 종을 불러들여 '이 악한 종아, 네가 애걸하기에 나는 그 많은 빚을 탕감해 주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 하며 왕은 몹시 노하여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는 내용입니다.

  이 자리에 다윗이 있었다면 일만 달란트 빚진 그 놈은 마땅히 벌을 받아 할 놈이다. 이런 놈을 살려 둘 수 없는 놈이다. 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바로 네가 그 놈이다. 라고 말씀 하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어떻습니다. 우리 또한 다윗과 별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 일만 달란트 빚진 자는 다른 사람이 아닌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찬양을 부르고, 기도를 드리며 예배하면서 경배하는 저와 여러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백 데나리온 빚진 자는 안 믿는 사람 내지는 자이고, 교회 안에 들어와 있기는 하나 믿지 않는 난 크리스천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살면서 세상 안 믿는 자, 소위 난 크리스천들이 믿는 그리스도인들보다도 더 자비하고, 포용력이 있으며, 큰마음을 소유할 때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를 비롯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너무나도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결  론: 말씀을 맺기를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용서하지 않았던 일 만달란트 빚진 자는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백 데나리온 빚진 자가 감옥에 들어가 일을 하여 백 데나리온을 갚고 세상으로 나왔다고 해 봅시다. 몇 년이나 걸렸을까요? 1년-2년 정도면 충분했겠지요. 그러나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은 자, 일 만달란트를 빚진 자가 그 빚을 갚기 전에는 감옥에서 나올 수 없다면 그는 영원히 나올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란 바로 타인을 위한, 용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용서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멋진 인생을 살 것인가? 아니면 죽음 같은 인생을 살 것인가? 아니면 용서의 길을 갈 것인가? 일생동안 증오하면서 인생의 길을 갈 것인가? 그것은 저와 여러분들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15.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21.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23.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26.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32.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34.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35.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15.また,もし,あなたの兄弟が 罪を 犯したなら,行って,ふたりだけのところで 責めなさい.もし 聞き 入れたら,あなたは 兄弟を 得たのです.
16.もし 聞き 入れないなら,ほかにひとりかふたりをいっしょに 連れて 行きなさい.ふたりか 三人の證人の 口によって,すべての事實が 確認されるためです.
17.それでもなお,言うことを 聞き 入れようとしないなら갂 敎會に 告げなさい.敎會の言うことさえも 聞こうとしないなら,彼を 異邦人か 取稅人のように 扱いなさい.
18.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 告げます.何でもあなたがたが 地上でつなぐなら,それは 天においてもつながれており,あなたがたが 地上で 解くなら,それは 天においても 解かれているのです.
19.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もう 一度,告げます.もし,あなたがたのうちふたりが,どんな事でも,地上で 心を 一つにして 祈るなら, 天におられるわたしの 父は, それをかなえてくださいます.
20.ふたりでも 三人でも,わたしの名において 集まる 所には,わたしも その中にいるからです.」
21.そのとき,ペテロがみもとに 來て 言った.「主よ.兄弟が 私に 對して 罪を 犯したばあい,何度まで 赦すべきでしょうか.七度まででしょうか.」
22.イエスは 言われた.「七度まで,などとはわたしは 言いません.七度を 七十倍するまでと 言います.
23.このことから 天の御國は 地上の王にたとえることができます.王はそのしもべたちと淸算をしたいと思った.
24.淸算が 始まると,まず 一万 タラントの 借りのあるしもべが,王のところに 連れて 來られた.
25.しかし,彼は 返濟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ので,その 主人は 彼に,自分も 妻子も 持ち 物全部も 賣って 返濟するように 命じた.
26.それで,このしもべは,主人の前にひれ 伏して,『どうかご 猶予ください.そうすれば 全部お 拂いいたします.』と 言った.
27.しもべの 主人は,かわいそうに 思って,彼を 赦し,借金を 免除してやった.
28.ところが,そのしもべは,出て 行くと,同じしもべ 仲間で,彼から 百デナリの 借りのある 者に 出會った.彼は その人をつかまえ,首を 絞めて,『借金を 返せ.』と 言った.
29.彼の仲間は,ひれ 伏して 『もう 少し 待ってくれ.そうしたら 返すから.』と 言って 賴んだ.
30.しかし 彼は 承知せず,連れて 行って,借金を 返すまで 牢に 投げ入れた.
31.彼の 仲間たちは 事の成り 行きを 見て,非常に 悲しみ,行って,その 一部始終を 主人に話した.
32.そこで,主人は 彼を 呼びつけて 言った.『惡いやつだ.おまえがあんなに 賴んだからこそ 借金全部を 赦してやったのだ.
33.私がおまえをあわれんでやったように,おまえも 仲間をあわれんでやるべきではないか.』
34.こうして,主人は 怒って,借金を 全部返すまで,彼を 獄吏に 引き 渡した.
35.あなたがたもそれぞれ,心から 兄弟を 赦さないなら,天の わたしの父も,あなたがたに,このようになさるのです.」
Date : 2019-11-12 07:23:58    Read : 58 
 주일 설교 동영상 (유투브에 들어가셔서 동경성산교회 치시면 주일설교를 보실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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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하 강해 (16) 죄와 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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