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고이와성산교회
 
 
 
2023/01/28
열왕기하 강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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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예수
Subject     열왕기상 강해 (22) 기도란 무엇입니까?
성경: 왕상 18:41-46절,  제목: 기도란 무엇입니까?
설교: 김 병철목사,  일시: 2022년 9월 25일 (주일)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은혜에 말씀의 제목은“기도란 무엇입니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기를 소원합니다. 이 말씀을 읽고, 듣고, 보는 가운데 성령 하나님의 폭포수와 같은 놀라운 은혜와 능력이 저와 여러분들 심령 가운데 넘쳐나시기를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기독교 역사는 기도하는 한 사람에 의해 시작되었고, 기도하는 한 사람에 의해 부흥되었으며, 기도하는 한 사람에 의해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존녹스는 스코틀랜드의‘피의 여왕’메리와 투쟁하며 개혁신학의 자유를 실제로 쟁취해낸 사람입니다. 그가 죽음도 불사하며 오로지 개혁을 향한 믿음과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비결은 다름 아닌 기도였습니다. 그가 칼뱅과 함께 제네바에 있을 때 스코틀랜드교회 개혁에 앞장서 달라며 그의 동지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이를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알아듣고“오 하나님, 스코틀랜드를 저에게 주옵소서”라며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메리 여왕 앞에서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로마교회는 창녀와 같다. 교리, 관습이 온갖 영적인 간음으로 더럽혀져 있다. 만약 회개치 않으면 교황도 왕도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고 외쳤습니다. 그 결과 그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존 녹스가 선포대로 메리 여왕은 중병에 걸렸고, 결국 그를 옥에서 풀어주며 여왕이 말하기를“영국의 100만 군사보다 기도하는 한 사람 존 녹스가 더 무섭다.”고 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오늘도 기도하는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바로 그를 통해 주의 뜻을 이루시고 주의 나라를 세워 가시기를 원하십니다.“기도하는 한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 한 민족보다 더 강하다.”고 종교개혁자 존 녹스가 말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기도와 능력은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선포합니다. 야고보서 5:13-18절에“13.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14.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16.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17.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엘리야는 기도의 사람이었고, 또한 하늘의 능력을 이 땅으로 끌어당기는 힘을 가졌던 사람이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와 능력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본문을 통해서 그것을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사람 아합왕입니다. (41-42절) 본문을 보면 마치 아합왕과 엘리야가 엄청 친한 사이처럼 느껴지는 대목이 나옵니다. 정상적으로 본문을 해석하자면 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엘리야 선지자는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겼던 거짓 선지자들을 기손 시냇가에서 다 죽이고 아합왕을 책망해야 옳았습니다. 아합 당신이 그렇게 섬겼던 바알과 아세라 신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하나의 나무요 돌 조각에 불과한 것이다. 당신은 백성들과 여호와 앞에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키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외쳐야 옳지 않습니까? 그러나 엘리야 선지자가 아합왕에게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치 아합왕과 엄청 친한 사이처럼 아합왕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모습을 본문 41-42절 상반 절을 통해 알수 있습니다.“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소리가 있나이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고 했습니다. 아니 책망을 받고 혼이 나도 시원찮을 아합왕에게 올라가서 먹고 마시라니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마치 엘리야 선지자가 아합왕을 심히 걱정하는 모습입니다.“왕이 얼마나 배가 고팠습니까? 어여 올라가서 먹고 마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아합 왕은 엘리야의 말대로 먹고 마시기 위해 올라갔다고 기록합니다.

  아합왕은 세상 육적인 사람의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세속적인 사람의 대명사이지요.“먹고 마시며, 육체적인 것에 몰입해 있던 사람”입니다. 지금 때가 어느 때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뭄에 먹고 마시는 그 자체가 어려운 시기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왕이 백성들과 함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마땅한 것인데, 자기 배가 고프다고 먹고 마시기 위해 올라갔다고 한다면 이것은 정말 리더로서는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왕이지요. 그리고 지금 배가 고프다고 음식이 입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상황입니까? 자기가 믿었던 바알, 그 거짓 선지자들이 다 죽었는데요. 바알와 아세라는 부부 우상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당시, 바알은 풍요 신, 그리고 아세라 우상은 다산의 신으로 믿었지요. 그런 풍요와 다산의 신을 믿었던 거짓 선지자들이 기손 시내에서 모두가 무참하게 죽었습니다. 이 와중에 음식이 입으로 넘어간다는 것 그 자체가 웃기는 상황이 아닙니까? 그의 아내는 분노하기를 엘리야를 잡아 죽이려고 했던 반면에 아합은 먹고 마시는데 집착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합왕이 육적인 사람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후에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나봇의 포도원 사건이 있지 않습니까? 열왕기상 21장에 아합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탐을 냅니다. 나봇의 포도원이 너무나 좋으니깐 본래 땅값보다 더 많이 줄 터이니 자신에게 팔 것을 권유하기 위해 여러 차례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나봇은 조상들이 준 땅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 땅을 사고팔 수 없도록 하셨기에 단호히 절을 합니다. 그러니깐 아합왕은 그때부터 그는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며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 상황을 지켜본 그의 아내 이세벨이 자신이 그 땅을 당신에게 줄 터이니 먹고 마시라고 말하지요. 이후에 이세벨은 지금으로 표현하자면 강패들을 시켜서 하나님과 왕을 모욕했다는 이유를 만들어, 나봇을 쳐 죽이고, 결국,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아 아합왕에게 주었습니다. 여기에서도 이 아합왕은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것을 꼭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철저하게 육적이고, 세속적인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세속과 육적인 존재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영적인 사람,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의 삶 속으로 끌어당기는 힘을 가졌던 사람 엘리야입니다. (42절) 그는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땅에 무릎을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과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먹고, 마시러 올라가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머리를 무릎과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하러 올라갔다니 너무나 상반된 모습이 아닙니까? 그 모습과도 같이 그의 삶 또한, 희비가 분명히 가려집니다. 여기서 우리는 엘리야 선지자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흔히 엘리야 선지자의 이미지를 건장한 체구에, 키가 크고, 털이 많은 사람으로 연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아마도 엘리야는 키가 작고, 털이 많으며, 뚱뚱한 사람이 아닌 홀쭉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일반적으로 자신의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을 정도면 기본적으로 배가 나오면 머리를 집어넣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키가 크면 오랫동안 무릎과 무릎 사이에 자신의 얼굴을 집어넣고 기도하기도 힘든다는 것이지요. 이런 정황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면 아마도 엘리야 선지자의 이미지는 키가 작고, 홀쭉하며, 털이 많았던 사람으로 추측해 볼 수가 있습니다.

  한 번쯤 생각해 봅시다. 당시 850명의 거짓 선지자를 기손 시냇가에서 쳐 죽였다면, 얼마나 피곤하고 힘들었겠습니까? 물론 엘리야 선지자가 모든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도 인간인지라 육체적으로 피곤하여 쉬고도 싶었을 텐데, 그는 영적으로 큰 빗소리를 듣고는 산으로 기도하기 위해 올라갔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엘리야 선지자는 기도의 사람이고, 영적인 사람이었음을 분명히 할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사환에게는 산꼭대기에 올라가 바다를 보고 구름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무릎과 무릎 사이에 머리를 넣고는 기도했지요. 이 모습은 그가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는가를 잘 표현해 주는 내용입니다. 또한, 엘리야 선지자의 성격이 무슨 일을 하면 끝을 보는 성격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성경 여러 곳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오늘 본문이기도 합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기도하기 전에 큰 빗소리가 있음을 감지하고 기도를 했던 것이지요. 사환에게 일곱 번씩 그리하라고 한 것은, 한 마디로 끝을 볼 때까지 기도했다는 것이지요. 일 곱이라는 숫자는 물론, 완전 수를 말하기도 하지만, 다른 표현으로는 구름이 생길 때까지, 구름이 보일 때까지 올라가라는 것은 엘리야가 하나님으로부터 미리 응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환이 일곱 번째 올라가 바다를 보매, 손바닥 만한 구름이 떠 오랐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간절한 기도로 비전, 꿈, 기적을 발견했습니다. 작은 구름이 후에 엄청난 구름과 비를 몰고 올 징조라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의 순리를 이용하여 큰비를 내려 주셨습니다. 해가 쨍쨍 찌는 날에 비가 오지 않습니다. 구름층이 모여있을 때 비가 오게 되는 법이지요. 제가 무슨 기상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일기예보를 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기본 상식적으로 구름층이 모여있을 때 비가 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먼저는 작은 구름을 통해서 엄청난 큰 구름를 준비하셨고, 그리고 그 구름을 통해 큰비를 몰고 왔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엘리야 선지자가 기도한즉 비가 3년 6개월 동안 오지 않았고, 다시 기도한즉 비가 내려 땅에 열매를 맺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이고, 기도의 결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사가 다 그렇습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듯이 조금씩 조금씩 밥을 먹고, 반찬을 먹으면 배가 부르지 않습니까?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잘 모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듣고, 읽으면 점점 신앙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0:17절에“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실 때에는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작은 손바닥만한 구름(비전)을 보여주시면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한 발자국씩 순종하며 나아갈 때,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싸인도 없었는데, 무턱대고 자신의 경험을 의지하여 행동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자충수(어려움을 겪게 될 것)를 두게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의 능력을 힘입은 엘리야입니다. (46절)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증거는 여러 차례 우리가 보고 들었기 때문에 알 수가 있습니다. 엘리야에게 여호와의 능력이 임했다는 사실이 그 증거입니다. 앞에서 배웠던 것처럼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에서 까마귀들이 아침과 저녁으로 빵과 물고기를 가져다 주었고, 사르밧 과부의 가정을 돌보실 때도 가루 통에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기름병에 기름이 마르지 않도록 하셨을 뿐 아니라, 죽은 아들을 살려주셨습니다. 또한, 엘리야를 통해서 당신이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에서 불을 땅에 내려주신 사건과 그가 기도하므로 비가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게 하시고, 다시 기도한즉 비가 내리므로 땅에 열매를 맺게 하셨던 사건들은 모두 다 그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과 여호와의 능력이 그와 함께하고 있음을 증거하는 결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또 다른 증거를 마지막으로 살펴보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본문 46절을 함께 읽어봅시다.“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시므로 엘리야가 허리를 동여매고, 달려갔는데 먼저 갔던 아합왕보다도 더 빨리, 아합왕을 앞질러서, 이스르엘 어귀에까지 달려갔다는 것입니다. 무슨 엘리야가 칼루스도 아니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우사인볼트도 아닌데 어떻게 먼저 간 아합보다, 그것도 마차를 타고 간 아합왕보다도 더 빨리 앞질러 이스르엘로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네! 성경은 말도 안 되고, 이해가 안 되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가 얼마나 많습니까? 중요한 것은‘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능력이 임하시면 말이 안 되는 것이, 말이 되어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앞에서 열거했던 기적들이 여러분들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어 믿는 것입니까? 아니지요. 사실 엘리야의 이와같은 능력은 바로 기도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했다는 것은 그가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9:29절“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고했습니다. 또 다른 번역 성경은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기도하지 않고서는 그런 것을 쫓아낼 수 없다.” 공동번역 성경은 “이런 부류는 기도로 내쫓지 않고는, 어떤 수로도 내쫓을 수 없다.”, 우리말, 현대인 성경은 “이런 귀신은 오직 기도로만 쫓아낼 수 있다.” 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는 것도, 비가 오는 것도 내 말이 없으면 오지 않는다고 했지요. 비가 언제 왔습니까? 엘리야가 기도할 때 비가 내렸고, 비가 오지 않았던 것도 그가 기도한 후에 오지 않았습니다. 엘리야가 그릿 시냇가에 숨어서 무엇을 했을까? 당연히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통하지 않았겠습니까? 그 이후에 하나님께서 까마귀들을 통해 아침, 저녁으로 먹을 것을 제공하셨습니다. 사르밧 과부의 집안을 돌보실 때도 엘리야가 기도하므로 여호와 음성을 듣고 먼저 듣고 선포했습니다.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릴 때도 그는 기도한 후에 과부의 아들을 살렸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임할 때도 기도한 후였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린다면 기도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도와 능력은 비례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기도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많은, 분들이 기도를 정의하기를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말합니다. 맞습니다. 인정합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기도를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하나님의 능력을 나의 삶 속으로 끌어당기는 힘이다.”또 다른 표현은“하나님의 능력이 나의 삶 속에 임하므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림이 임하게 하는 힘입니다.”엘리야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말씀을 맺기를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 없이 그 무엇인가를 성취하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곧 교만입니다. 자만입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무엇을 하든지 기도가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기도보다 급한 것도 없고, 기도만큼 중요한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저와 여러분들이 기도하는 것과 예배하는 것, 영적인 일을 하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사탄은 저와 여러분들이 기도하는 것을 원치 않으니깐? 우리들을 바쁘게, 분주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기도하려고 하면 회사에서 물건이 없어지고, 직장에서, 가정에서 소소한 일들이 터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일을 처리하고 나면 진이, 다 빠져서 결국 기도하는 시간을 놓치게 되고, 예배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 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의 환경을 바꾸셔야 합니다. 주부는 그때, 그때 주어진 일을 미루지 않고 처리하는 환경, 직장을 다시시는 분들은 작업환경을 바꾸어야 합니다.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시대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체크하고 배워야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탄이 방해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빌리그래함 목사는 말하기를“기도는 아침을 여는 열쇠요. 저녁을 닫는 자물쇠와도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속화되지 않아야 하고, 믿음 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경건의 모양만 갖추어서는 안됩니다. 엘리야처럼 기도의 사람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들의 삶 속으로 끌어 당기는 능력을 힘입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41.それから,エリヤはアハブに言った「上って行って飮み食いしなさい.激しい大雨の音がするから.」42.そこで,アハブは 飮み食いするために 上って行った.エリヤは カルメル山の頂上に 登り,地にひざまずいて 自分の顔をひざの間にうずめた. 43.それから,彼は若い者に言った.「さあ,上って行って,海のほうを 見てくれ.」若い者は 上って,見て來て,「何もありません.」と言った.すると,エリヤが言った.「七たびくり 返しなさい.」44.七度目に 彼は,「あれ.人の手のひらほどの小さな雲が 海から 上っています.」と言った.それで エリヤは言った.「上って行って,アハブに言いなさい.『大雨に閉じ込められないうちに,車を整えて 下って行きなさい.』」45.しばらくすると,空は 濃い雲と風で 暗くなり,やがて激しい 大雨となった.アハブは 車に乘って イズレエルへ行った.46.主の手が エリヤの上に下ったので,彼は 腰をからげて イズレエルの入口まで アハブの前を走って 行った.
Date : 2022-10-09 08:52:19    Read : 12 
 열왕기상 강해 (23) 로뎀나무 아래 엘리야
작은예수
 요한복음 14:15-21절 / 성령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작은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