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고이와성산교회
 
 
 
2022/08/11
사울의 과거와 바울의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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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작은예수
Subject      2022년 4월 3일 (헌신의 첫걸음 )
성경: 행9:1-22절,    제목: 헌신의 첫걸음
설교: 김병철 목사, 2022년 4월 03일(주일)

  서 론: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은혜의 말씀에 제목은“헌신의 첫걸음”입니다. 이 말씀을 읽고 듣고 보는 가운데 성령 하나님의 폭포수와 같은 은총이 넘쳐나시기를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오늘이 불투명하다는 것입니다. 오늘이 불투명하기에 내일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가 불안해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직은 절망도 좌절할 때도 아닙니다. 소망을 가지고 내일을 준비합시다. 2차 세계대전 때 포로 2만 명이 수용되어 있던 일본군 포로 수용소에서 무려 8000명이 죽었는데 그 사인은󰡐절망󰡑이었습니다. 또한, 600만명의 유태인들이 학살된 나치 포로수용소 지하 감옥 벽에 손톱으로 그려진󰡐다윗의 별󰡑이 발견되었는데 그 그림 밑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비록 태양이 우리에게 비치지 않지만, 저기 태양이 있는 것을 믿노라. 비록 사랑이 내게 느껴지지 않지만, 저기 진실한 사랑이 있는 것을 나는 믿노라. 비록 하나님이 침묵 가운데 계시지만 나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노라.󰡓나치수용소의 처참한 고통을 이겨내고 살아난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그의 저서 󰡐의미를 찾는 인간의 탐색󰡑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나치수용소의 말할 수 없는 잔인한 고문과 무서운 형벌, 비인간적 학대 속에서 나를 생존하게 만든 것은 바로 희망이었습니다.󰡓희망은 바로 생존의 근거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믿는 하나님의 사람, 자녀들입니다. 그렇다면 믿는 자녀들은 어떤 희망을 가지고, 신앙의 첫걸음을 내디뎌야하겠습니까? 크리스천들은 하나님께 헌신 해야한다는 중압감에 붙잡혀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헌신은 부담이 아닙니다. 중압감이 아니라 기쁨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기쁨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신의 첫걸음을 떼실 수 있을까요?

  본 론: 패기만만한 실력 있고, 능력 있는 한 젊은이를 오늘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의 이름은 사울입니다. 이 사울이 대제사장에게 위임장을 받아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옥에 넣기도 하고 자신의 섬기는 유대교의 논리에 맞지 않으면 살인까지 일삼는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자라난 가정환경은 남달랐습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자로 태어났고, 혈통적으로는 베냐민 지파였으며,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열심으로는 그리스도 교회를 핍박했던 사람입니다. 또한,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빌3:4-6절“4.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나는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실력적으로 보면 그는 당대 최고의 선생인 가말리엘 문하생이었습니다. 가말리엘 선생은 사도행전 5장에 나옵니다. 거기에서 율법사로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그리고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에게 권면할 정도로 실력과 능력을 겸비한 덕망이 있는 자였습니다. 대제사장뿐 아니라 바리새인들까지도 그의 말에 청종할 정도로 그를 다 존경했고, 그의 말을 따랐습니다. 그는 당대 가말리엘의 학자였습니다. 가말리엘의 문하생이 된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또한,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들어가야만 하는 곳이 바로 가말리엘 문하생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한다면 서울대, 동경대, 하버드대 들어가기보다 어려웠다고 보아도 됩니다. 사울이 바로 그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천재였고, 장래가 촉망된 사람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사울은 초 엘리트 중에도 엘리트였던 사람이 사울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그처럼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던 사울이 철저하게 무너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은 사울에게 있어서 아픔과 괴로움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면적으로 보는 것이고, 또 다른 측면으로 본다면 이 사건은 사울에게 있어서 최고의 축복의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생각해 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자신감과 확신에 넘쳐있었던 사울입니다. (1-2절) 본문에서 발견한 사울은 자신감이 철철 넘치는 사람이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사울은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는 엄청난 명문대학 졸업장을 등에 업고, 총장의 추천을 받아 모 대기업의 회장의 신임을 받고, 젊은 나이에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사람을 죽고, 살 수가 있었고, 옥에 가두어 넣을 수 있는 권력이 그에게 주어졌던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자신감과 확신이 넘쳐있었던 사울이었습니다. 앞 전의 말씀을 드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울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고,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일 뿐 아니라 자신의 맡겨진 일 앞에서 목숨을 걸 만큼 책임감이 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나무랄 때가 없는 사람이 바로 사울이었습니다.

  현대를 속도 전쟁이라고 합니다. 누가 한 발 더 빨리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겨 상품을 만드는가? 이것이 관건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빠른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성입니다. 속도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어느 방향으로 더 빨리 달려갈 것인가? 본문에 나오는 사울은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빨랐던 사람입니다. 그는 실력도 있었고, 자신감, 책임감,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확신 모두 다 갖춘 퍽페트한, 완벽한 인물입니다. 만약에 기업에서 사원을 뽑는다면 사울과 같은 청년을 서로가 뽑으려고 아우성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속도는 빠른 사람인지는 모르나, 방향을 잘못 잡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출세와 명예를 위해서 무작정 뛰고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의 출세와 명예의 걸림돌이 된다면 그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상관없이 모두 다 죽이든지, 옥에 쳐넣든지 할 수 있는 철저히 자기중심, 이기주의자였습니다.

  외람된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이 퍽페트한, 완벽한 성격을 깨뜨리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자신의 출세와 성공 그리고 명예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것을 없애려는 그의 모난 성품을 깨뜨리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되고 있는 그 자신감, 확신, 책임을 무너트리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를 만나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신앙의 첫출발, 헌신의 첫걸음은 나는 할 수가 없습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나는 죄인입니다.’,‘나는 이미 십자가에 죽었던 자입니다.’,‘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할 때 신앙의 첫 출발이고, 헌신의 첫걸음을 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울의 속도가 너무나 빠름을 알려줄 뿐 아니라, 세상에 너무 심취에 졌음을 알려주시기를 원하셔서 그를 만나주셨던 것입니다. 사울은 자신이 믿고 있는 유대교에 흠뻑 져서 있었습니다. 그는 행위로 구원을 얻는 줄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선을 행합니다. 기도도 합니다. 기도가 부족하면 일주에 몇 번이고 금식까지 합니다. 유대교의 충성, 봉사했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옥에 가두기도했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를 죽일 때에도, 사울은 그들의 옷을 맡았습니다. 뿐만아니라, 그의 죽음에 동의, 동참했던 사람입니다. 이렇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향하여 달려간 사람이 바로 사울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사울은 출세, 성공, 명예, 권력에 심취해져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인생을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여겼던 사람입니다. 아니 목사님!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라고 묻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적 가치관, 세계관입니다. 기독교 가치관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울의 이와 같은 잘못된 인생의 방향과 그의 인생 설계도를 고쳐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사울이 믿는 사람들을 잡아 옥에 넣으려고 다메섹에 온 사울을 만나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수정 하셨습니다.“지금까지는 너 자신을 위해서 살았던 것을 이제는 네가 아니라, 나를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성령님을 위하여 너의 장점을 사용해줄 수 없었니!”,“네가 달려가고 있는 속도는 좋으나 방향이 틀렸어! 이제 세상에 심취했던 방향을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향하여 쓰면 좋겠구나!”예수님은 사울의 그 잘못된 인생의 방향을 바로 잡아 주셨습니다. 사울이 다멕섹 도상에 도착했을 때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울은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주여 당신은 누구십니까?’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는 질문 속에는 여러 가지 질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너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니! 무엇 때문에 앞도, 뒤도 돌아보지 않은 체 그렇게 무작정 달려가고 있는 거니! 너는 왜!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지 못해서 그렇게 야단법석을 떨고 있니! 지금 네가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이유가 누구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니! 너를 위한 것, 아니면 종교지도자들을 위한 것, 아니면 유대교를 위한 것...도대체 무엇을 위한 일이고, 누구를 위한 일이냐!”

  사실 사울은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예수님을 단 한 번도 그분의 육성을 들어 본적도, 그분의 얼굴을 본적도 없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전래 동화처럼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솦 이야기처럼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다메섹에서 주님을 뜨겁게 만나는 축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헌신의 첫걸음은 주님을 만날 때 헌신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의 무너짐이 그의 인생에서 놀라운 축복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울을 무너뜨리기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생각해 봅시다. 첫째, 예수님을 강력하게 만났다. (3-9절), 둘째, 빛으로 인하여 눈이 멀었다는 것이다. 영적인 눈이 열렸다는 뜻입니다. (3-9절), 셋째, 아나니아와 사울에게 환상을 보여 주셨다.(11-17절), 넷째, 환상이 그대로 이루어졌다.(17절), 이 모든 사건이 무려 삼일만의 이루어졌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급하게 일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완벽하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사울을 변화시키는 데 충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이후로 그가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에 대해서도 아셨습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사울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붙잡혀 쓰임 받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15-16절) 본문 15-16절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유대인의 사도라고 부른다면 사도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쓰임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울은 회심 이후에 엄청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세계를 깜짝 놀랄 정도의 사역자가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1)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다. 이는 열방의 선지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입니다. 2)임금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고위층들뿐 아니라 임금, 왕에게 까지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3)이스라엘 자손들과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울이 회심은 당시는 아픔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회심을 통한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사울은 회심이후 영적인 축복을 누리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17-22절) 사울은 자신이 과거의 핍박했던 예수, 그 복음을 오히려 전파하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사울의 인생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황홀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그는 그 어느 순간보다도 행복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 황홀한 인생을 사는 사울에게 그만큼 크고 힘든 고통과 희생이 따랐음을 본문을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하지만 희생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영광은 추구하지만 십자가를 지기를 싫어합니다. 존귀한 자리에 들어가기를 원하지만 고통과 희생을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이 그렇습니다. 고난이라는 눈물의 빵을 먹지 않고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하물며 누구나가 다 부러워하는 황홀한 인생을 사는데, 고통이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꿈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사업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고난이라는 터널을 통과하지 않고 승승장구하며 성장하는 기업은 없습니다.

  사울도 다메섹의 고통, 경험이 사울을 바울로 만든 계기가 된 것입니다. 사울은 모든 것을 다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의 고백을 들어봅시다. 빌3:7-9절 “7.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명예, 권력, 좋은 환경, 잘 나갈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선택했다. 아니 그리스도께서 그를 선택해 주셨다고 해야 맞겠지요. 이 귀한 것들을 다 포기할 정도로 예수 그리스도는 존귀하신 분이십니다. 심지어는 나의 목숨을 포기하고도 얻을 수 있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줄 믿습니다.

  결 론: 말씀을 맺기를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신은 지금 어디로 달려가고 있습니까? 또한, 무엇에 그렇게 심취해 있습니까? 당신의 인생 방향은 제대로 잡으셨습니까? 내가 지금 달려가는 속도는 이대로 괜찮은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위해 일하고 계심을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창조 목적대로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은 무엇을 포기하고, 내려놓아야 할까요? 자신감, 확신, 경험을 내려놓고 기꺼이 주님의 도움이 구합시다. 헌신의 첫걸음은 바울처럼 예수님을 만나야 됩니다.
Date : 2022-04-03 09:56:25    Read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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