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고이와성산교회
 
 
 
2022/06/19
시편 20편 여호와의 성호를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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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작은예수
Subject     4월10일(주일 낮 설교) /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이유?
성경: 막11:1-11 제목: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이유?
설교: 김병철 목사 2022년 4월 10일(주일 낮 설교)

  서  론: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은혜의 말씀에 제목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이유?"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기를 소원합니다. 이 말씀을 읽고 듣고 보는 가운데 성령 하나님의 폭포수와 같은 은혜가 임하시기를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6세기 영국의 순교자 가운데 존 후퍼라는 이가 있습니다. 그는 성직자의 결혼을 주장한 것과 사제가 떡과 포도주를 놓고 축사하면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한다는 화체설을 부인하였다는 죄목으로 1553년 런던탑에 투옥되었습니다.

  1년 반 이상 감옥에 갇혀 있던 그에게 한 친구가 찾아와서 이렇게 권하였습니다. "인생은 달콤한 것이지만, 죽음은 쓰디쓴 것이네. 이 점을 생각하고 고집을 버리게나." 적당하게 타협하여 죽음을 피할 것을 종용하였던 것입니다. 후퍼는 깊이 생각한 후 친구에게 "내세에서의 생은 이생보다 더 달콤하다네. 그리고 지옥의 고통은 죽음보다 더 쓰다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얼마 후 화형에 처해졌지요. 죽음의 순간을 맞게 된 후퍼는 사형 집행관들을 위해 복을 빌어 준 후,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아주소서"라고 외친 다음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의 순교는 영국교회가 개혁의 틀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신앙은 세상과의 타협이 아니다. 진리를 위해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이 있다고 해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본  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올리브산 근처 벳파게와 베다니아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는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맞은편 마을로 가 보아라. 거기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지 않은 새끼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을 것이다. 그것을 풀어서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왜 그러느냐고 묻거든 주님이 쓰신다고 하라 그러면 곧 풀어서 보내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가보니 과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어린 나귀가 길가로 난 문 앞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푸는데 거기 서 있던 사람들이 "왜 나귀를 풀어 가오?" 하고 물었습니다. 제자들은 너무나 깜짝 놀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께서 일러 주신 대로 말했습니다. 주께서 쓰시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나귀 주인은 순순히 제자들에게 새끼 나귀를 끌고 가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 나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았습니다. 예수께서 거기에 올라앉으시고,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겉옷을 벗어 길 위에 펴놓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들에서 종려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흔들며 환호했습니다.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 받으소서!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가 온다. 만세! 높은 하늘에서도 호산나!" 이윽고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거기서 이것저것 모두 둘러보시고 나니 날이 이미 저물었습니다. 그래서 열두 제자와 함께 베다니아로 가셨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기 위해 예루살렘 입성하신 내용입니다. 그러면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신 예수님과 환호하는 백성들을 생각해 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첫째, 우리들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이십니다. (1-6절)  본문에서 예수님이 앞일을 미리 알고 계시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되어 질 일을 모두 알고 계셨던 분이라는 뜻입니다. 아니 목사님! 새삼‘예수님께서 앞일을 미리 알고 계시다.’는 뜻이 뭐가 대단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예수 그리스도께 묻지 않습니까? 왜! 예수그리스도를 의지하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있는 것과 믿는 것이 이처럼 다르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이 마태복음17:24-27절에 나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가버나움에 이르렀을 때, 성전 세를 걷는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당신네 선생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습니까?”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내십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집에 들어가자, 예수님께서 먼저 말씀을 꺼내셨습니다.“어떻게 생각하느냐? 시몬아, 이 세상의 왕들은 관세와 세금을 누구에게서 받느냐? 왕의 자녀들한테 서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한테 서냐?”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다른 사람들에게서 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왕의 자녀들은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성전 세 걷는 사람들을 자극해서는 안 되겠다. 그러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라. 그리고 첫 번째 낚은 물고기의 입을 벌려 보아라. 은돈 한 개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성전 세 걷는 사람에게 나와 네 몫으로 주어라.”"고 하셨습니다. 이때도 베드로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했더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호수가에 가서 낚시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고기를 낚았습니다. 첫 번째 고기 입을 열어보았더니 정말 예수님의 말씀대로 은한 개가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베드로가 이미 예수님께서 어떤 분인가를 경험했습니다.

  본문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길거리에 가면 아무도 타지 않은 새끼 나귀가 걸려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풀어 가지고 오너라. 나귀를 풀 때, 누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느냐 하면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라 그러면 보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앞으로 되어질 일과 당신께서 직접 행할 일까지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실 이야기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고통 당하실 것을 벌써 감지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조롱이 있을 것이라는 이 땅에 오실 때부터 확실히 알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밑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이미 보시고 알고 계셨습니다. 삭개오가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아시고 여리고로 오셨던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아파하며, 힘들어하시는지를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시는 분이 창조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믿습니까? 왜냐하면! 그분이 저와 여러분들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고난을 받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오르신, 만 왕의 왕 예수님입니다. (7-10절)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실 때에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국의 대한 엄청난 결단을 한 것으로 알고 예수님을 환영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데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줄 것으로 생각하고 환호성을 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게 세팅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는데 제자들과 주변의 있는 사람들은 마치 세상 왕을 추대하는 모습을 연상케 하지 않습니까? 7-10절을 살펴봅시다. "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진정한 의도와 인간의 바램이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이익(정치적 해방)의 도구로 사용하거나, 한 낫 유대의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오르신 것이라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였고, 한 나라의 왕이 아니라, 만 왕의 왕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들의 예수님을 한 낫 유대의 왕으로 삼으려고, 자기들이 바라는 편협 된 왕으로 추대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한번 살펴봅시다.

1)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제자들도 나귀 등 자신들의 겉옷을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2)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폈다.)
3)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4)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다.)
5)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이스라엘의 회복을 노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들의 바램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전혀 이 광경과는 맞지 않는 모습으로 사람이 한 번도 타지 않은 새끼 나귀를 타고 올라가셨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세상의 왕으로 오셨다면 백 말을 타고 가시거나 근사한 마병을 끌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을 것입니다.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개선문을 통과할 때 마병이나 흰 백마를 타고 들어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을 한 번 자세히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 임금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백마를 탄 것도 아니고, 근사한 마병을 타고 올라가신 것도 아닙니다.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새끼 나귀를 타고 입성했다는 것입니다. 새끼 나귀가 성인의 몸무게를 지탱할 수나 있었을까? 어쩌면 예수님께서 워낙 외소 하셨기때문에 가능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기대를 했을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로마 정부를 향한 그 무엇인가의 엑션을 취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니면 사람들을 선동하여 무리를 일으키어 유대의 해방과 새롭게 도래할 다윗의 왕권을 회복할 것을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것도 행하시지 않으시고 예루살렘을 둘러보시고 날이 이미 저물매 베다니에 제자들과 함께 가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약간은 김빠진 모양새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사람들은 또 기대했을 수도 있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에 조금은 피곤해서 어제는 그냥 잠을 주무시고 이제 새롭게 무엇인가를 시도하실 것이라고 생각했고, 성전으로 모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또, 다시 무리의 기대, 무리의 희망을 무너트렸습니다. 오히려 오전에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전 들어가셔서 그 유명한 성전을 정화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성전을 더럽힌 사람들을 책망하고 성전의 본질을 망가트리면서까지 장사하는 자들의 상을 엎으시고 채찍으로 그들을 호되게 야단을 치셨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때가 왔구나! 예수님께서 엄청난 일을 개혁하시는구나! 그러나 그 이후에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종교지도자들의 비난을 받고 그들에게 붙잡히게 됩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아! 우리가 생각한 예수가 아니구나! 우리들이 착각한 것이구나!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의 배신하는 사건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의 예수님께서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폭동을 일으켰다면 예수님은 유대인의 혁명가로, 영웅으로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신이 지고 가야 할 십자가를 지시고 그 모진 고통을 겪으시면서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놓이는 수모를 겪으시고 결국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만 왕의 왕으로써의 진면모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은, 인간들은 예수님을 한 낫 유대의 왕으로 모시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한 나라의 왕이 되는 것을 거부하셨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삶의 한 일부분의 주인으로 모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일부분이 아니라 삶의 전부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한 나라의 왕이 아니라 만 왕의 왕이십니다. 우리의 삶의 한 부분을 다스리시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다스리시기를 원하시는, 만 왕의 왕이십니다. 우리의 개인과 가정과 학교, 직장, 사업, 교회, 나라뿐 아니라 전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리시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이 이 땅에 살면서 그 하나님의 나라, 전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모르는 백성들에게 증거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셋째, 예언을 성취,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이십니다. (7-8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는 것이 자신의 뜻이 아닌 오래전부터 예언하신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올라가셨다는 뜻입니다. 구약성경 스가랴 9:9절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무려 예수님께서 오시기 520년 전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무려 500년 전에 기록된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줄 믿습니다. 자신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500년 전부터 예언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그 고난과 수모를 겪으셔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은 만 왕의 왕으로써 당당하게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

결  론: 말씀을 맺기를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믿는 우리들의 인생을 미리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이미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은 인간의 이익과 한 나라의 왕이 아니라 만왕의 왕이시고 우리들의 삶의 전체를 다스리시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래전부터 계획하신 하나님 뜻을 성취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삼일만에 부활승천하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Date : 2022-04-10 09:34:07    Read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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